2021년 01월 28일, 목요일


국토와교통

2021년 1월호
(통권 438호)


간도를 지킨 사람들 (3)


  조병현 박사     입력 2021/01/12 (화)



청전 조병현 박사의 북한 땅 이야기
 
간도개척 장려와 지권을 발급한 어윤중

어윤중(魚允中, 1848~1896)은 경제개혁을 추진했던 당대의 온건파 엘리트 관료였다. 서북경략사(西北經略使) 때는 청과의 통상협력을 도모하면서 간도지방을 조선의 영역에 포함시키려 노력했고 아관파천(俄館播遷)으로 정세가 변화되자 낙향하다가 비운의 죽음을 맞았다.

어윤중은 1881년 조정에서 신사유람단 60명을 일본으로 파견할 때 박정양, 홍영식 등과 함께 반장인 조사(朝士)로 선발되었다. 이 무렵에 국내에서는 수신사 김홍집(金弘集)이 가져온 황준헌(黃遵憲)의 『조선책략(朝鮮策略)』을 둘러싸고 유생들의 위정척사론이 비등하였기 때문에 신사유람단의 파견은 극비리에 진행되었으며, 시찰단원의 조사들은 동래암행어사로 발령을 받아 일본으로 출국하였다. 약 3개월에 걸쳐 일본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의 시설·문물·제도 등을 상세히 시찰하고, 7월에 영선사(領選使) 김윤식과 합류하기 위하여 9월 상해(上海)를 거쳐 천진(天津)에 도착했다.

여기에서 어윤중은 김윤식과 청에 유학을 온 우리나라 공학도(工學徒)를 만나고 청의 북양대신(北洋大臣) 이홍장(李鴻章), 해관총독(海關總督) 주복(周馥) 등과 회담한 뒤 12월에 귀국하였다. 그는 1년간에 걸친 일본·중국 시찰의 복명서를 제출하여 개화정책을 추진하는데 크게 영향을 끼쳤다.

어윤중은 1882년 2월 17일 문의관(問議官)에 임명되어 통상문제와 연미사를 논의하고 당시 천진에 파견되었다. 그러나 어윤중이 천진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미국의 제독 슈펠트(Shufeldt, R. W.)가 이홍장과 세 차례의 회담을 마치고 조미조약(朝美條約)의 초안을 가지고 3월 24일 조선으로 떠난 이후였으므로 연미사의 문제는 덜었지만 통상문제가 남아 있었다. 조미통상조약 문제를 심의하고 영국대표와 만나 조영수호조규를, 독일대표와 조독수호조규를 협의했다.

어윤중은 조약 체결의 전권을 위임받지 않았기 때문에 조정의 자문을 기다리던 중 임오군란이 일어나 향도관으로 귀국하였다. 임오군란이 끝난 8월 12일 다시 문의관에 임명되어 진주사(陳奏使) 조영하, 부사(副使) 김홍집, 종사관(從事官) 이조연과 함께 천진으로 가서 중단되었던 통상 논의를 재개하였다. 통리내무아문(統理內務衙門) 참의 때는 국가재정 확보에 힘을 쏟으면서 20개 조로 된 정부기구 개혁안을 제출했다. 이로 인하여 집권 세력의 미움을 사서 서북경략사라는 변방의 외직으로 밀려났다.
 
이것이 간도와 인연을 맺는 계기가 되었다. 1883년 3월 청측과 중강(中江)무역장정을, 6월에는 회령통상장정을 체결하는 등 북방무역에서 조선의 이익을 증진시키는데 노력했다. 그리고 백두산정계비를 기준으로 도문강과 두만강의 국경지대를 조사하고 숙종 때 세운 백두산정계비의 탁본을 떠오도록 했다. 어윤중은 답사 결과를 토대로 백두산정계비에 기록된 토문강이 송화강 상류인 도문강이 틀림없으므로 간도가 조선 영토임을 주장하면서 청의 현지 관료에게 백두산정계비와 토문강 발원지에 대한 공동 조사를 통해 국경을 획정하자고 제기했다. 조선 정부도 청에 대해 토문감계(土門勘界)를 지속적으로 요청해 1885년부터 1887년에 걸쳐 두 차례의 감계회담(勘界會談)이 개최되었으나 토문강의 해석에 합의를 하지 못해 결렬되었다.

그리고 그는 간도 거주 한국인들에 대한 보호정책을 추진하였다.

조선인의 간도 대규모 이주를 급격히 촉발시킨 계기는 1869년부터 1871년까지 함경도와 평안도지방을 비롯한 서북지역에 사상 유례가 없는 대흉년이 들었기 때문이다. 조정에서 제대로 구휼책도 강구하지 못하는 형편이라 국금(國禁)을 무릅쓰고 도강 이주를 단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무렵 현지 지방관이 간도 이주를 솔선 추진하는 사례도 생겼다. 회령부사 홍남주는 기아에 허덕이는 주민들을 구제하기 위해 두만강 대안지역에 대한 개간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인수개간(引水開墾)을 월강 명목으로 설정토록 지시하였다.

그동안 국법으로 도강을 금지하던 간도지역에 대한 개간 허가 소식이 전해지자 빈민들은 주저없이 월강 이주하게 되었다. 이주민의 수가 급증하게 됨에 따라 황무지 개간도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어 갔다. 홍남주의 간도 개간 승인 이후 중앙정부 차원에서 어윤중은 조선인의 간도 이주를 행정상 강력하게 뒷받침해 주었다. 그는 회령 등지의 변경지대를 순회하면서 간도 개간문제를 직시하고 조정에 올린 보고서에 ‘월강죄인을 죽여서는 안 된다(越江罪人不可殺)’라고 하면서 종래의 변방정책을 수정해 줄 것을 공식으로 요청하였다. 그리고 그는 간도의 개간지에 대하여 토지 소유권을 정부 차원에서 인정해 주는 문서인 ‘지권(地券)’을 교부하여 조선인의 간도 이주를 실질적으로 승인해 주었다.
 
1882년 청나라는 임오군란에 개입하여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한 뒤 간도 거주 한국인들에 대한 세금 징수와 호적 정리를 시행하고 귀화를 강요하였다. 여기서 더 나아가 변발(辮髮)과 편복(便服) 등 청나라 풍속을 강요하며 따르지 않는 한국인들을 추방하기도 하였다. 1883년 조선과 길림성 당국 간에 체결된 ‘조길통상장정(朝吉通商章程)’에 근거하여 청 정부에서는 1885년 화룡욕(和龍峪, 현 용정시 智新鄕)에 통상국(通商局)을 설립하고 광제욕(光霽峪, 현 용정시 光開鄕 光昭村)과 서보강(西步江, 현 훈춘시 三家子鄕 古城村)에 통상분소를 설립하였다. 통상국 분소를 월간국(越墾局)으로 고치고 두만강 이북으로 길이 700리, 너비 50리 되는 광범위한 지역을 조선인 이주민을 위한 특별개간구로 확정하였다.

이 결과 조선인 이주민의 수는 더욱 급증하게 되었고 서북간도 도처에 평야와 분지, 그리고 구릉지를 따라 조선인 마을이 형성되어 갔다. 개간농경지에는 다양한 농작물이 재배되어 조․옥수수․고량․기장․콩 등의 밭농사도 크게 성행하였다. 이주 조선인사회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던 농업은 하천 유역의 저지와 습지에서 일으킨 벼농사였다. 이렇게 전토의 대부분은 조선인의 피땀 어린 노력으로 개간되었고 그 중심에 어윤중이 있었다.

어윤중은 1884년 12월 일어난 갑신정변에 가담하지 않았지만 갑신정변에 연좌되어 굶어 죽은 스승 박원양의 장례를 치러 주었다가 비판을 받아 보은으로 귀향하기도 했다. 1893년에는 보은(報恩)에 수만 명의 동학도가 교주 최제우의 신원(伸寃)을 요구하며 모여들어 들자 조정은 어윤중을 양호순무사로 임명하여 보은으로 급파했다. 교조신원(敎祖伸寃)과 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를 주장하는 동학지도자들을 만나 그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조정의 관대한 처분을 약속해 동학지도부의 해산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장계를 올려 동학도를 비도(匪徒)라 칭하면서 탄압하는 분위기에서 ‘비도(匪徒)가 아니라 민당(民黨)’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로 인해 동학농민들의 지지를 얻었지만 관료들과 재야 선비들로부터 식언을 했다는 빈축을 샀다.

아관파천 이후 어윤중도 일본 측의 망명 제의가 있었지만 거절하고 고향인 충북 보은으로 낙향하다가 안성과 용인 경계에 있는 어비율마을에서 ‘춘생문 사건’에 참여했다가 목숨을 건져 이곳에 숨어 지내던 유진구와 정원로, 동네 청년들에게 몽둥이에 맞아 무참하게 타살되어 시신은 장작더미에 얹혀져 태워졌다. 이때가 1896년 2월로 그의 나이 47세였다.

어윤중의 사망 소식을 들은 황현(黃玹)은 《매천야록(梅泉野錄)》에서 동학교도를 ‘비도라 하지 않고 민당’이라 한 점을 비판하면서도 어윤중은 김홍집과 함께 세상을 구제할 만한 인재로 칭했다. 그가 살해된 후 개화에 앞장설 사람이 없음을 한탄하면서 아쉬워했다.

어윤중이 설계한 경제개혁의 뿌리는 북학을 실현하고자 했던 박지원의 ‘이용후생’과 ‘실사구시(實事求是)’에 기반을 두고 있다. 박지원의 개방적 중상주의(重商主義)와 그의 사상을 이어받은 손자 박규수의 문호개방 ‘근대화론’을 계승해서 생산력을 증대하고 화폐경제를 발달시킬 수 있는 국가경제체제를 근간으로 한 경제 근대화를 설계했다. 그러나 개혁을 위해 절대권력을 내려놓지 않고 외세에 의존해 체제를 유지하려고 한 조선은 망국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어윤중은 국민들에게 신뢰받던 유능하고 시대를 앞서간 명망 있는 엘리트 관료였다. 집권세력이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민감한 조세개혁도 단호히 조치하고 간도개척 장려와 지권을 발급하여 간도를 지킨 제일의 인물로 평가해 마땅하다.
 
간도를 측량하여 토지대장을 작성한 서상무

서상무(徐相懋, 1856~1925)는 제천시 덕산면 선고리에서 태어났다. 동학농민운동 때에는 진압군을 일으켜 동학 수령을 체포한 공로로 포상을 받았으며, 제천의 을미의병에 참여하였다. 유인석(柳麟錫)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친일파 탐관오리 숙청에 힘썼다. 광무원년(1897)에는 고종의 칙유(勅諭)로 상관이 되어 요동 관순현(寬旬縣)에서 구국단체의 도총부(都摠府) 도총관(都摠管)으로 활약하였다. 이후 비서원랑, 시종원시종을 거쳐 주로 압록강 이북의 간도 지역을 대한제국의 지방 행정 조직에 포함시키는 일을 하였다.

1897년(고종 34) ‘변계관리사’에 임명되어 통화현(通化縣)·회인현(懷仁縣)·관전현(寬甸縣)·흥경부(興京府) 등을 새로운 행정구역에 배속시켰다. 또한 서간도 지역의 토지를 측량하여 토지대장을 작성하고 호구조사를 하는 한편, 향약을 시행하여 간도 지역을 지배하기 위한 기초 작업을 하였다.

서간도 지역은 청이 1667년부터 1875년까지 봉금하였으나 1881년 봉금이 해제되었다. 이 지역은 백두산 서쪽으로 1700년대부터 조선 월강민이 작은 부락을 형성했으며 이미 봉황성 일대까지 조선의 관할이 미친 곳이다. 박지원의 열하일기와 서양 고지도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1872년 봉금지역을 답사한 군관 최종범, 김태홍이 기록한 ‘강북일기’에 의하면 노령산맥 남쪽의 간도지역은 이미 ‘회상제’라는 자치기구가 조직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곳은 세종 때인 1432년과 1437년에 두차례 파저강 토벌작전으로 압록강 대안의 여진족을 토벌해 4군을 개척한 지역이다. 세종 12년(1467년)에는 건주여진을 협공했는데 강순, 어유소의 두 장수가 압록강 너머 회인현 부근을 공략해 이만주 부자를 포함한 280여명을 잡아 죽이는 등 여진을 완전소탕했다.

백두산정계비를 건립한 이후에도 봉황성 이동 압록강 대안 사이의 무인지대의 관할권이 계속 조선에 있었다. 심지어 조선 근해의 경호권과 도선장 관할권도 조선이 행사했을 뿐만 아니라 봉금지대는 실제적으로 조선에서 그 관할권이 소속돼 있었다. 즉 경원 및 훈계 월변(越邊) 2~3리에 집을 짓고 거주하는 자의 철퇴를 요구하여 가옥을 철거하고 강 근처에 집을 짓고 경작하는 것을 엄히 금지하였다. 이와 같은 사실은 실제 백두산정계비 건립 전에도 이 지역은 조선이 관할했다는 점을 말해 주고 있다.

백두산정계비 건립 전후에도 실질적인 국경선은 압록강과 두만강이 아니었다. Du Halde의 지도 중 레지의 비망록에는 “봉황성의 동쪽에 조선국의 국경이 있다”고 했으며, 천하대총일람지도에는 압록강 대안지역에서 송화강에 이르는 변책이 표기돼 있다. 그리고 ‘Kaoli Koue ou Royaume de Coree’ 지도와 ‘The Kingdom of Korea’ 지도에는 ‘PING-NGAN’이라는 지명이 만주에서 평안도에 걸쳐 표기돼 있다. 청의 황여전람도를 원본으로 한 1750년의 보곤디, 1794년의 윌킨스 등 수많은 서양지도에도 압록강 북의 봉황성 일대에서 두만강 위쪽 연변 일대로 이어지는 동간도 지역으로 국경 표시가 돼 있다.

이러한 연고로 조정에서는 1897년 서상무를 서변계 관리사로 임명하여 서간도 한인을 보호토록 했으며 1900년에는 평북관찰사 이도재는 압록강 대안지역을 각 군(郡)에 배속시키고 충의사를 조직해 이주민을 보호하게 했다. 한편 서간도의 서상무도 1902년 호적을 조사해 ‘변계호적안’을 작성했는데 총 7개 면의 1176호에 남녀 총 3374명이었다. 면단위의 호수는 리, 통으로 행정 체계화됐다. 통에는 통수를 두었으며 각 통에는 10내지 20여호를 관할하는 촌락제를 채택하고 있었다.

이처럼 1897년에는 서간도와 1902년에는 동간도 관리사를 파견하는 등 통치력이 미치고 있었다. 대한제국은 1897년부터 1907년까지 약 10년에 걸쳐 한반도 전역은 물론 간도 지역의 호구까지 조사해 ‘신식 호적’을 작성했다. 당시 대한제국은 고위급 관리인 서상무를 ‘변계관리사’로 임명해 호구조사와 아울러 민생을 살피도록 조치한 것이다.

당시 간도지역에는 호구조사 훨씬 이전부터 조선인들이 거주하고 있었고, 청나라 조정에서도 조선인들의 이주를 공식 요청하기도 했다. 조선인들의 이주로 청나라 주민들과 마찰이 빈번해지자 대한제국은 정부 관리를 파견해 조선인들을 보호하기 시작한 것이다.

서상무가 간도 지역의 호구를 조사하여 작성한 변계호적안이 ‘평안북도초산강북(楚山江北)호적’이다. 호적은 그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다. 지명과 함께 실제 거주자들이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영토문제 해결에는 거주하는 주민들의 의사가 대단히 중요하다. 그 대부분의 거주 주민들이 당시 우리 동포였기 때문에 그들이 살고있는 그 지역 내의 주민수, 생활실태를 작성한 변계호적안은 영토문제를 주장하는 입장에서 보면 필수적인 자료다.

1902년(광무 6년, 고종 39년) 서상무를 서간도 향약 부향약장에 임명하여 사무를 관장케 했다. 정부에서 서간도 관내에 향약을 설치하고 의정부 참찬 이용태를 향약장에, 서상무를 부향약장에 임명한 것이다. 이는 서간도 지역의 주민을 관장하기 위한 관리를 중앙에서 직접 파견함으로써 실제 통치하였음을 나타내 주는 것이다.

서상무가 간도를 조선의 지방 행정 조직에 배속시키는 활동을 도운 사람으로 단양군 출신의 김교헌(金敎憲)을 빼놓을 수 없다. 김교헌은 1895년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이 지도하는 호좌의진에 참여하였고, 전군장인 정운경(鄭雲慶)의 종사관으로 활동하다 변계관리사로 임명된 서상무를 좇아 간도를 조선의 지방 행정 조직에 배속시키는 활동을 도왔다. 그 이후에는 노령으로 건너가서 이범윤이 이끄는 의병 부대에 들어갔으며, 1908년(순종 2) 무산 전투에 출전하였다가 전사하였다.

1902년 서상무가 조사한 변계호적안을 보면 중앙 정부의 힘이 어떻게 서간도에 미치고 있었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변계호적안이 작성된 지역은 모아산면, 간도면, 신별면 등의 8개 면으로 당시 이 지역에 정착한 이주민의 본래 고향과 연령분포가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조사 지역의 단위가 우리나라 고유의 행정구역인 ‘면(面)’으로 표기되고 있다. 그 당시 중국은 ‘현(縣)’이란 고유의 행정구역을 사용하는데 이를 면으로 표기한 것은 이 지역이 우리나라의 행정구역으로 편입됐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1903년 5월 유지시찰단으로 양지달과 김상흡 등이 압록강 대안지역에 대한 호적조사를 실시하였다. 여기에 따르면 서간도 지역에는 모두 32개의 면이 편제돼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가운데 고구려 국내성이 있던 집안현 일대에는 대황면-구룡면-신상면 등 모두 7개의 면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의 고토인 이 지역에 100년 전까지도 우리의 행정력이 미치고 있었던 것이다. 청나라의 주장과 관계없이 우리나라의 영토가 서간도에까지 이르고 있었음은 증빙해 준다.

변계호적안에 나오는 지명을 당시 중국 명칭과 대조해서 지도에 표시를 해보면, 조사가 이뤄진 지역이 한반도가 아니라 서간도 일대임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표시한 국경선은 청나라 강희제가 프랑스 측량전문가인 레지에게 지시해 만든 지도의 이른바 ‘레지선’과 거의 일치한다. 서간도가 조선의 땅임을 청나라도 받아들이고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간도 지역이 국경회담에서 거론되지 못한 것은 백두산정계비와 관련이 있다. 서간도를 우리 영토라고 주장하려면 우선 백두산정계비와 그에 따른 국경획정의 효력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백두산정계비 상의 ‘서위 압록’에 의하면 서간도 지역이 우리 영토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백두산정계비가 세워질 당시의 정황을 보면 합법적인 국제협약으로 인정하기 어려운 점도 발견된다. 국제협약은 당사국 간의 완전한 합의를 통해 성립되는데, 백두산정계비의 경우 청나라가 위치와 비문의 내용을 임의로 정해 합의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백두산정계비 설치 이후에도 서간도가 우리의 실질적인 영향력 아래 있었던 것이 이를 증명해 준다.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의 소용돌이 속에 열린 1887년과 1888년 회담에서도 청은 두만강으로 국경을 획정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 회담이 실패로 끝난 이후 중국은 간도 이민정책과 조선인에 대한 귀화정책을 통해 간도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권을 강화해 나갔다.

그러나 청나라의 입장은 달랐다. 감계회담 때 서간도 지역이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던 것은 ‘서위 압록’의 경우 ‘동위 토문’과 같이 이론의 여지가 없어 압록강을 국경선으로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청나라에서는 지속적으로 서상무의 철수와 국경 침범 방지를 요구해 왔다. 대한제국 정부에서도 청나라의 요구에 한인의 보호와 외교문제을 고려해 서상무 체포령을 내리기도 했다. 서상무의 체포령은 이범윤의 소환령과 마찬가지로 부처간 불협화음으로 실제 체포하거나 소환되지 않았다.
 
대한제국 시절 작성된 간도 지역 호적인 ‘평안북도 초산강북(楚山江北) 호적’을 분석한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임학성 HK 교수에 의하면 간도 지역에 거주하는 조선인의 생활 양태는 전형적인 조선인 가정의 모습이다. 당시 서간도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인 호주(戶主)의 연령분포는 40대 후반이 19.2%로 가장 많고, 50대 전반 16.4%, 40대 전반 14.7%, 50대 후반 10.3% 순이었다. 40∼50대 호주 비율이 60%에 달해 노동력을 요구하는 농업이 주업으로 나타났다. 가족 유형은 2인 가족 39.2%, 3인 가족 28.8%, 4인 가족 19.2% 등의 순으로, 가족 수가 적었는데 이는 딸을 호적에 거의 등재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간도지역의 호적은 조선 정부가 간도 지역을 실효 지배했음을 보여주는 문서로 궁내부의 관할로 만들어졌다. 이는 조선의 행정력이 간도에 미쳤음을 보여주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이다. 당시 대한제국은 고위급 관리인 서상무를 ‘변계관리사’로 임명해 호구조사와 아울러 민생을 살피도록 조치했다. 주로 압록강 이북의 간도 지역을 대한제국의 지방 행정 조직에 포함시키는 일을 하였다. 특히 서간도 지역의 토지를 측량하여 토지대장을 작성하고 호구조사를 하는 한편, 향약을 시행하여 간도 지역을 지배하기 위한 기초 작업을 하였으나 1907년 간도 협약으로 간도 일대가 청의 영토로 들어가면서 그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서상무가 발급한 호적부는 ‘평안북도초산강북호적안’ 은 규장각에 보관돼 있다.

간도지역의 영유권을 주장할 수 있도록 간도지역을 측량하여 토지대장을 만든 서상무를 추모하기 위하여 간도본부에서는 2014년 6월 6일 충북 음성군 금왕읍 구계리 산4-1번지에 있는 묘소를 찾아 참배했다. 간도되찾기운동본부와 한국간도학회 회원, 대구서씨와 첨추공파 후손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행사를 가지고 필자가 서상무 서간도 관리사에 대한 강연을 실시하여 그의 공적을 추모하였다.

조병현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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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수변도시·육상태양광·스마트그린 산단 착공 최근 관련 법 개정되면서 사업진행 탄력받을 전망   국토교통부와 새만금개발청은 지난 12월 18일 새만금 스마트 수변도시 및 육상태양광 선도사업, 스마트그린 산업단지 착공식을 진행하고 새만금을 탄소중립 및 그.. 이미영 기자 | 국토와교통 2021년 01월호(438호)
호남고속철도 2단계 공사 본격 추진

인천발·수원발 KTX 직결사업도 시공업체 선정 인천·경기 서남부권, 전남 고속철 수혜지역 확대   국토교통부는 고속교통서비스 확충을 위한 호남고속철도 2단계 및 인천발, 수원발 KTX 직결사업 등 3개 사업 6개 공구 노반공사의 시공업체가 선정되었으며, 착공에 들어.. 이미영 기자 | 국토와교통 2021년 01월호(438호)
확 바뀌는 제도, 모르면 손해 본다

종부세율·양도세율 인상…분양권도 주택 산입 ‘신특·생초’ 자격완화 등 달라지는 제도 많아   2020년 부동산 시장은 풍부한 유동성과 낮은 금리에 따른 자금 유입으로 거래량이 늘고 가격이 상승했다. 이에 시장 안정화와 투자수요 억제를 위해 양도소득세(양도세)와.. 이미영 기자 | 국토와교통 2021년 01월호(438호)
스마트시티 추진 동향과 건설산업의 대응 방향

스마트시티가 다양한 도시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인식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핵심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전통 업태인 건설산업 관점에서 막연한 희망과 불안이 공존하고 있어 스마트시티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방향성을 모색코자 한다. 국내에서.. 이승우 허윤경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 국토와교통 2021년 01월호(438호)
국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과 영국 ‘기업과실치사법’의 비교 분석

국민청원과 함께 지난 6월 발의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 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건설산업연구원(원장 이재영)은 최근 ‘국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과 영국의 기업과실치사법 비교 분석’ 보고서를 통해 “국내의 환경과 건설업의 특성을 고.. 손태홍 최수영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 국토와교통 2021년 01월호(438호)
부산·대구 등 36곳 조정대상지역 추가지정

주요 과열지역 고강도 실거래 조사·현장단속 착수 주택법 개정…읍면동 단위 규제지역 지정 가능해져   정부가 최근 집값이 급등하고 있는 창원시 의창구를 투기과열지구로 신규 지정했다. 또한 부산 9곳, 대구 7곳, 광주 5곳, 울산 2곳 등 4개 광역시 24곳과&nbs.. 박병기 기자 | 국토와교통 2021년 01월호(438호)
트러스단열프레임과 발수처리 그라스울을 이용한 건식 외단열 시공기술

결합 방식으로 용접 배제 설치, 안전성·시공성 확보  최근 건축물의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에너지 절감 기술 개발이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12월 10일 발표를 통해 “탄소중립은 우리나라가 선도국가로 도약할 기회”라며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 김정현 기자 | 국토와교통 2021년 01월호(438호)
함양울산선 중 밀양∼울산 구간 개통

동서 이동 획기적 개선…주행시간 22분 단축   국토교통부는 지난 12월 11일 고속국도 제14호 함양울산선(145㎞) 중 밀양∼울산 구간을 우선 개통했다. 밀양∼울산 구간은 경남 밀양시와 울산광역시 울주군을 잇는 총 길이 45㎞·왕복 4차로 고속도로로, 총사업비 2조 14.. 이미영 기자 | 국토와교통 2021년 01월호(438호)
2020년 최우수 택배서비스 ‘우체국·경동’ 선정

2020년 택배 서비스 평가결과 일반택배 분야에서는 우체국택배가 최우수 평가를 받았다. 이어서 CJ대한통운, 한진, 롯데글로벌로지스가 높은 평가를 받았다. 기업택배 분야에서는 경동택배가 최우수 평가를 받았으며, 대신, 용마, 성화, 합동택배가 다음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 김정현 기자 | 국토와교통 2021년 01월호(438호)
전면 책임감리 도입이 국내 건설산업에 끼친 영향

 「기술사법」 개정 방향 ⑥ 1995년 전면 책임감리 도입이 국내 건설산업에 끼친 영향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38분 서울 한강에 위치한 성수대교의 상부 트러스가 추락하여 사망 17명, 부상 32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붕괴사고로 서울 도심지 .. 박효성 건설기술교육원 겸임교수 | 국토와교통 2021년 01월호(438호)
간도를 지킨 사람들 (3)

청전 조병현 박사의 북한 땅 이야기 간도개척 장려와 지권을 발급한 어윤중어윤중(魚允中, 1848~1896)은 경제개혁을 추진했던 당대의 온건파 엘리트 관료였다. 서북경략사(西北經略使) 때는 청과의 통상협력을 도모하면서 간도지방을 조선의 영역에 포함시키려 노력했고 아관.. 조병현 박사 | 국토와교통 2021년 01월호(438호)
위법한 공사 소음의 참을 한도는?

대법원 2018.11.9. 선고 2015다251935 판결 들어가며 공유수면 매립공사를 위해서는 일정한 토지에서 토석을 채취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토석 채취 작업의 경우 발파소음이 발생하는데 이러한 발파소음의 경우 관련 법령이 인정하는 보정 기준치를 넘지 않으면 인근 주민들이.. 김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 | 국토와교통 2021년 01월호(438호)
탈모 유전자 스위치를 누가 켜는가?

유전자를 작동 또는 억제하는 스위치가 있다. 예를 들면, 폐암 유전자가 있어도 금연하면 폐암이 걸리지 않지만 폐암 유전자가 없어도 담배를 많이 피우면 폐암이 걸릴 확률이 12배 이상 증가한다. 탈모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란성 쌍둥이인 세계적인 록그룹 비지스(.. 류영창 박사 | 국토와교통 2021년 01월호(438호)
2021년 신축년 '한우'의 재발견, 면역력 높여주고 근력강화에 좋아

2021년은 신축년(辛丑年) 흰소띠의 해다. 흰소는 예로부터 신성한 기운을 지니고 있다고 전해진다. 특히 소가 십이지신의 두 번째 동물이 된 일화는 유명하다. 소는 자신이 느리다는 것을 알고 누구보다 먼저 출발하여 우직하게 달려가 1등으로 결승점에 도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 김정현 기자 | 국토와교통 2021년 01월호(438호)
가장 높은 꿈을 가장 가깝게 만나는 곳, 서울 국립항공박물관

‘KOREANS TO HAVE AVIATION FIELD(한국인이 비행장을 가지다).’ 1920년 2월 19일 〈윌로스데일리저널(Willows Daily Journal)〉 머릿기사 제목이다. 기사는 쌀농사로 거부가 된 김종림이 한국 청년을 위해 비행학교를 설립한다는 내용을 포함해 비행장 부지 40ac(에이커, 약 16만.. 정철훈 여행작가 | 국토와교통 2021년 01월호(438호)
영토학자 조병현 박사, 장편소설 '간도묵시록' 출간

조병현 박사, 우리 영토 간도를 되찾기 위한 고난의 역경 자전적으로 풀어내공학박사이자 지적기술사인 조병현가 그이 첫 소설, 『간도묵시록』(좋은땅출판사)을 출간했다. 이 책에서 토지와 인간 사이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현상을 연구해 온 저자는 우리가 힘이 없어 빼앗긴 간도.. 이미영 기자 | 국토와교통 2021년 01월호(438호)
[11.19 전세대책] 공공임대 11.4만가구 투입 ‘전세난 돌파’

30평대 중형 임대도 2025년까지 6.3만가구 공급 거주기간 6년 보장되는 ‘공공전세’ 새롭게 도입   정부가 전세난을 해결하기 위해 3개월 이상 공실인 공공임대를 무주택자라면 소득 수준에 관계 없이 다 풀기로 했다. 또한 민간건설사와 매입약정을 통해 다세대, 오피스.. 박병기 기자 | 국토와교통 2020년 12월호(437호)
“공공임대 투입, 전세수급 불안 해소될 것”

국토교통부 윤성원 제1차관  “공공임대 11.4만호 투입, 전세수급 불안 해소될 것” 윤성원 국토교통부 제1차관은 11월 19일 발표한 전세대책에 대해 “1·2인 가구가 최근 늘어 내년과 내후년 전세 수급이 불안했지만 이번 대책 발표로 수급 불안 문제는 없어지게 됐다.. 박병기 기자 | 국토와교통 2020년 12월호(4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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