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9월 20일, 월요일


국토와교통

2021년 9월호
(통권 446호)


한·중 경계의 역사적 변화에 대한 시각 (2)


  조병현 박사     입력 2021/07/08 (목)



[특별기획] 청전 조병현 박사의 북한 땅 이야기
 
동북아 역사에 대한 CRS 보고서 검토

당은 백제와 고구려 지역을 영역화하지 못하였고 다만 왕조를 무너뜨리고 외형적인 행정구역을 일시적으로 설정한 데에 그쳤다. 일시적인 도성 점령과 군대 주둔 상태가 영역으로 표시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역사지도집』은 이를 영역으로 표현하여 당의 최대 판도를 과도하게 묘사하고 있다.

웅진도독부는 백제 멸망에 따라 한시적으로 설치되었다가 신라가 소부리주를 백제 고지에 설치함으로써 한반도에서 사라졌고(671년), 성격상으로도 나당연합군의 주둔군 사령부에 불과하였으므로 당이 한반도 서남부지역을 지배한 것으로 그린 것은 명백한 오류다. 당은 신라와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키고 그 지역에 웅진도독부를 설치하였으나 신라군도 함께 주둔했다는 점에서 그 영토를 완전히 차지했다고 볼 수 없다.

웅진도독부를 당의 영토로 묘사하고 있는 『중국역사지도집』은 역사적 사실에 보다 충실해야 할 것이다. 나당전쟁의 결과, 대동강 이남에서 원산만 이남의 한반도는 신라의 차지가 되었다. 이 점에서 대동강 이남 지역을 당의 영토로 그린 것도 역시 역사적으로 온전치 못하다고 할 것이다.

668년 고구려 멸망 후 당은 고구려지역에 외형상 당의 행정구역인 도독부와 주를 설정하고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하여 이를 관할케 하였다. 그러나 고구려 부흥군과 신라군의 공격으로 버티지 못하고 곧 670년 안동도호부를 신성(요령성 무순시)로 옮겼다가 다시 676년 요동성(현재의 요령성 요양시)로 철수하였다.

“Map 21 and 22 show a very different situation just 72 years later, in 741. Here, the Tang Dynasty’s territory has shrunk back to north of what is now known as the Taedong River in Korea or the Daton Jian in Chinese (大同江), leaving today’s Pyongyang in Tang territory. The Korean peninsula south of that line is shown to be the non-Chinese territory of the Xinlou/Silla.”(CRS Memorandum, p. 5)
▲ 출처 : CRS 보고서, p.44.
 
위의 내용과 같이 741년 시기, 당의 영토는 요하 서쪽에 머물렀고, 그 동쪽은 발해국의 영역이었다. 이 지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한국사의 일원인 발해(698~926)의 존재가 나타나 있지 않다는 점이다. 지도상의 시점은 발해 3대 문왕(737~793)의 시기로 바로 전 무왕 대에 이미 고구려 영역의 상당 부분을 회복한 상태였고, 당은 한반도의 어떠한 지점이나 지역도 차지하고 있지 않았다.

중국학계가 발해를 당의 소수민족정권으로 분류하지만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하였으며, 당의 속국이 아니라 독립국이었다는 것은 다음의 사례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첫째, 발해 왕은 대왕, 성인, 황상이라 칭하고 독자적인 연호와 시호를 정하였다. 둘째, 발해인은 당의 과거시험에 응시할 때 외국인만을 대상으로 한 과거에 응시, 급제하였다. 셋째, 주변의 말갈족을 번국으로 상정하고 내부적으로는 황제국 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넷째, 일본에 보낸 국서에서 부여의 전통을 가지고 “고려국왕” 혹은 “천손”이라 자칭하였다. 다섯째, 당 이외에 일본, 신라 등 주변 국가들과 자주적으로 외교활동을 한 자주 독립국가였다.

820년경, 한반도의 평양으로부터 그 위의 서해안과 요동반도는 당이 아닌 발해의 지배하에 있었다. 한반도 동북부와 중국 요령성·길림성·흑룡강성 그리고 러시아 연해주 일대도 발해의 영역에 속하였다.
 
“Map 24 shows the situation in 943, during the Five Dynasties and Ten Kingdoms Period. It depicts the Liao Dynasty, also known as the Khitan Empire after its ethnic-Khitan founders, as controlling a broad swath of territory north of the Korean Peninsula. The Liao’s border with Koreais depicted as being well south of the Yalu and Tumen Rivers, following a curved line whose northern tip is just below the 40th parallel. The peninsula south of that line is shown as non-Chinese, Gaoli/Koryo territory.”(CRS Memorandum, p. 5)
▲ 출처 : CRS 보고서, p.45.

 
고려의 영역은 압록강 하류와 거기에서 이어지는 천리장성을 따라 설정되었다(993년 이후). 고려와 조선 초까지의 한국과 중국의 경계설정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중국역사지도집』에 완충지대나 중립지대가 없다는 점이다. 고려 전기 요와 고려 사이의 여진족들은 두 집단으로 나뉘는데 하나는 거란족과 가까운 집단이었고 다른 하나는 고려와 가까운 지역 거주민들로서 고려에 복종하기도 했다.

만약 앞의 집단이 거란에 포함된다면, 뒤의 집단은 거란과의 전쟁이 끝나는 1020년대부터 금나라가 건국하는 1110년대까지는 사실상 고려가 천리장성 이북으로 상당히 영향력을 확대하였으므로 고려의 영역에 포함시켜야 한다.

1356년 고려 공민왕 때 몽골의 직할지로 편입되었던 쌍성총관부를 수복하면서 고려의 영토는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에 이르렀다.

“Maps 33-38, showing the years 1433, 1582, 1820, and 1908, depict Chinese territory as ending at the Yalu and Tumen Rivers, the rivers that formed all but a small portion of the modern border between China and North Korea.”(CRS Memorandum, p. 6)
▲ 출처 : CRS 보고서, p.45.
 
1430년대 조선은 세종대에 여진을 정벌하고 압록강 상류에 4군, 두만강 하류에 6진을 설치함으로써 압록강․두만강을 북방경계로 삼았다. 명의 지배력은 요동지역 남부와 압록강 하류지역 서쪽에 한정되었다. 이후 17세기 중반, 여진족(만주족)이 청을 건국하고 중국을 통일하게 됨에 따라 조선과 청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삼게 되었다.

“Map B, depicting the territory of the Chinese Tang Dynasty (618-907), shows Chinese control extending down the west side of the Korean Peninsula to the peninsula’s southern tip.”(CRS Memorandum, p. 6)
▲ 출처 : CRS 보고서, p.46.

이와 같이 고구려가 멸망하기(668)까지 요하 이동의 지역과 한반도 북부지역은 고구려의 영토였고 이후 발해가 건국한 뒤로는 발해(698∼926)의 영토였기에 중국의 영토가 아니었다. 신라와 당이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키고 당은 그 지역에 웅진도독부를 설치하였다. 그렇지만 당군의 주둔은 일시적이었고 신라군도 함께 주둔하였기 때문에 당의 영역으로 간주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리고 몽골이 설치한 동녕부는 1290년에 고려가 다시 차지하였다. 고려는 무력으로 1356년 쌍성총관부를 수복하였다. 이 지도에는 이러한 사실 정보가 없어 전 시기에 걸친 원의 영역으로 오해할 소지가 많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동북아 역사에 대한 CRS 보고서 검토에서 나타난 한·중경계의 역사적 변화에 대한 한국의 시각은 한반도 북부지역에 대한 중국과의 연속성에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중국 근대 변계사』의 제1장에 나타난 한국과 중국의 경계에 대한 한국 측 주장을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중국 근대 변계사』의 제1장은 현재의 중국-북한 경계의 윤곽이 명 대인 15세기에 대부분 정해진 것으로 당시 양측의 지도자들은 두만(토문)강과 압록강을 경계로 삼기로 합의했다는 견해를 제시한다. 그러나 경계가 이 두 강의 근원지 사이에 위치한 땅 중 어느 부분을 지나야 하느냐에 대해서 두 국가 간의 의견이 부딪혔다(CRS Memorandum, pp. 6~7).

15세기 전반 조선은 여진을 정벌하고 압록강과 두만강을 북방경계로 삼았지만, 명의 지배력은 요동지역 남부와 압록강 하류 이서지역에 한정되었다. 『중국 근대 변계사』의 제1장은 15세기 전반 명과 조선 사이에 압록강․두만강 경계가 형성되는 과정을 중국측의 영토 확장의 시각에서 서술하고 있다. 중국 측에서는 15세기 초 명의 노아간도사가 관할하고 있던 건주좌위의 지배력이 압록강․두만강 이북지역까지 미쳤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15세기 초 이후 명의 지배력이 여진 지역에 미치지 못했다는 점에서 명과 조선이 압록강․두만강을 경계로 하였다는 서술은 잘못되었다. 한국 측 문헌에 따르면 고려는 공민왕 때에 압록강 연변지역에 군현과 방어시설을 설치하여 압록강 이남지역을 장악하였다. 이후 조선은 세종대에 여진을 정벌하고 압록강 상류에 4군, 두만강 하류에 6진을 설치함으로써 압록강·두만강에 이르렀다.
 
“In 1712 … [t]hey placed a boundary marker between the rivers, on a ridge near the peak of what China calls Xiao Bai Shan (小白山) in the Changbai Mountains, known in Korean as the Choson’gul or Jangbaek. Characterscarved on the marker noted that the Yalu River lay to the marker’s west and the Tumen River to its east. Yang relates, however, that in 1885, when Chinese Qing Dynasty officials attempted to work with Korean officials to demarcate theborder, teams sent to scout for the marker found it in a different spot. The Qing government charged that it had been intentionally moved in order to influence decisions about which of the streams that feed the Yalu and the Tumen Rivers should be considered their ‘true’ headwater streams for boundary purposes.”(CRS Memorandum, p. 8)
▲ 출처 : CRS 보고서, pp.47-48.
 
중국 측에서는 백두산정계비가 처음에는 소백산 분수령에 세워졌지만 건립 직후 조선인에 의해 백두산 남쪽 기슭으로 옮겨졌다는 ‘백두산정계비이동설’을 주장한다. 그러나 당시의 기록이나 고지도를 살펴보면 ‘백두산정계비이동설’이 추측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백두산정계비도」는 1712년 5월 백두산정계비 건립 당시에 그려진 것인데 백두산 남쪽 기슭에 세워진 정계비에 ‘강원비’(江原碑)라고 선명하게 표시되어 있다.

또한 백두산정계비 건립 당시 수석 통역관으로 접반사 박권을 수행했던 김지남이『북정록』에서 목극등과 박권 사이의 교섭과정 및 목극등의 압록강, 백두산 수원조사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홍세태는 목극등과 함께 백두산을 올랐던 김경문으로부터 백두산정계비 건립 당시의 상황을 전해듣고 기록한『백두산기』를 남겼다. 이들 문헌이 백두산정계비 건립 당시의 상황을 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1712년 백두산 남쪽 기슭에 백두산정계비가 세워졌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림] 백두산정계비도 : 1712년 백두산정계비 건립 당시의 지도(서울대학교규장각소장).

“China’s position, according to Yang, was that the Tumen River has three headwater streams, the Xidou Shui, Hongdan Shui, and Hontu Shui, and that only the Hongdan Shui lies to the east of the original site of the 1712 marker, the direction in which the marker indicated that the Tumen River flowed. The Qing government thus believed that the Hongdan Shui should form the border. The Korean position, however, was that the Hong Tu Shan Shui, should be recognized as the headwater stream, and form the border. In 1887, the Qing government proposed what Yang describes as a compromise, suggesting that another stream, the Shiyishui, known in Korean as the Sogul, be deemed the headwater stream of the Tumen River and form the boundary between the two countries. In 1889, with no agreement on which stream should be deemed the headwater stream, the Qing Emperor Guangxu ordered the erection of ten boundary markers, starting at the Shiyishui stream. Yang reports, however, that Koreans destroyed the boundary markers shortly after they were installed. The dispute went unresolved.”(CRS Memorandum, p. 8)
▲ 출처 : CRS 보고서, p.48.
 
중국 측은 1887년 조․청국경회담에서 소백산~석을수 국경이 합의되었음을 입증하기 위해서 국경회담 직후에 소백산에서 석을수까지 10개의 경계비를 세웠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청 자료에는 자국 측 감계위원이 소백산에서 무산까지 10개의 경계비를 세울 것을 길림장군에게 청원하였다는 기록만 있을 뿐 경계비를 세웠다는 기록은 없기 때문이다.

일본과의 간도문제 교섭을 담당하면서 국경문제 관련 자료를 섭렵하였던 오록정은『延吉邊務報告』(1908년)에서 양측의 타결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준비된 경계비를 세우지 못했다고 적고 있다. 또한 한국 측 문헌에 10개의 경계비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점, 1888년에 중국 측에서 다시 국경회담을 요청하였다는 점으로 미루어 경계비는 세워지지 않았다.

“The Chapter ends with discussion of the 1909 treaty between China and Japan. Japan had by then Korea into a protectorate, and was on the verge of annexing it. In the 1909 treaty, Japan ultimately recognized the Tumen River as forming part of the border between China and Korea. It also specifically agreed that this part of the border extended from the 1712 marker to the Shiyishui stream and along the stream to the Tumen River.”(CRS Memorandum, p. 8)
▲ 출처 : CRS 보고서, p.49.
 
중국 측은 간도협약에서 두만강 경계가 확정되었다고 하지만, 간도협약은 만주점령을 위하여 국경문제의 당사자인 한국 측을 배제한 일본 측에 의하여 체결되었다는 점에서 무효다. 조선이 두만강 이북지역의 이주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두만강 경계문제를 제기한 반면, 일본은 만주침략을 위하여 1907년 용정에 ‘간도파출소’를 설치하고 간도문제를 제기하였다. 1909년 간도협약 체결로 청과 일본 사이에 백두산정계비~석을수 경계가 합의되었지만, 국경문제의 당사자인 한국이 배제되었고 강압적으로 체결한 1905년 을사늑약에 근거하여 간도협약이 체결되었기 때문에 간도협약은 무효다.

“In documenting China’s struggles in the 19thand20thcentury to secure agreement that the Tumen and Yalu Rivers form the border between China and Korea, Yang appears to signal a strong, continuing Chinese commitment to those river borders. From Yang’s account, China’s position on the stretch of territory between the Tumen and Yalu Rivers may be less clear. The issue is significant not for strategic reasons, but because the area in question is in the Changbai/Choson’gul Mountains, which Chinese consider the mythical birthplace of the ancestors of the Manchu Emperors and which Koreans consider the birthplace of the Korean people.”(CRS Memorandum, p. 8-9)
▲ 출처 : CRS 보고서, p.49.
 
17세기 이래 압록강과 두만강이 조선과 청의 경계가 되었지만 두만강 상류 경계는 명확하지 않았다. 1712년 압록강과 두만강 사이의 경계를 명확히 하려는 목적에서 청은 백두산 기슭의 분수령에 정계비를 세워 압록강~백두산~두만강 경계를 명확히 하였다. 1880년대 조·청 국경회담 및 1907~1909년 간도문제 교섭과정에서도 두만강 경계가 논란의 중심이었으며, 백두산 자체가 논란이 되지는 않았다. 18세기 이래 경계 논의의 출발점이 백두산정계비인 이상 백두산은 한·중 양국의 경계를 이루는 산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중국 근대 변계사』의 제1장에서 백두산정계비와 국경협상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고 간도협약의 무효에 대하여 관련 자료와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중국동북변강연구』내 「고구려 연구의 몇 가지 문제」에 나타난 한국과 중국의 경계에 대한 한국측 주장을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In 2003, the Northeast Project published Research on China’s Northeast Borderland, a collection of papers from a conference held a year earlier. The collection includes a revealing essay presenting a Chinese explanation for the new scholarly interest in the Gaogouli/Koguryo, a kingdom that collapsed more than 1,300 years ago. In “Certain Questions on Gaogouli Research,”author Jiang Weidong of the Northeast Asia Research Institute at Changchun Normal University, in China’s Jilin Province, insists that the research is defensive in nature, intended to guard against territorial claims to parts ofthe present-day PRC primarily from China’s ostensible ally, North Korea. Jiang writes that Chinese concerns about North Korean intentions toward Chinese territory have been longstanding, but for many years, they took a back seat to the Chinese leadership’s insistence on the need to emphasize the friendship between the Chinese and North Korean peoples. The implication of his account is that the friendship has now frayed sufficiently to allow such concerns to be aired openly.”(CRS Memorandum, p. 9)
▲ 출처 : CRS 보고서, p.50.
 
중국학계의 동북지방 연구는 동맹국인 북한에 대한 우려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신중국 건국 이전인 김육불의 『동북통사』(1943)로부터 시작되었다. 김육불은 영토란 역사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며, 시대에 따라 확장되거나 축소되기도 하는 가변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중국에서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에 입각하여 고구려사를 정리하면서 오늘날의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가 마치 예전에도 중국의 영토인 것처럼 잘못 표시되게 되었다.

그러나 중국학자들의 주장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사료를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한 주장은 중국이 정치적 필요에 따라 국경선을 줄였다 늘였다 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일 수는 있지만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Jiang charges that Korean efforts to claim the kingdom as Korean are a legacy of imperial Japanese scholarship, which sought to develop pseudo-historical justifications for Japan’s invasion of China. Japan, Jiang states, worked hard to develop a theory that Japanese and Koreans were of shared ancestry, and then sought to claim for Korea the ancient kingdoms of Gaogouli/Koguryo, Baiji/Paekje (百濟), and Bohai/Balhae (渤海)in order to provide historical cover for Japanese expansion into northeast China. The Gaogouli/Koguryŏand Bohai/Balhae kingdoms were particularly important because their territories extended well into areas of northeast China that Japan coveted.”(CRS Memorandum, p. 9-10)
▲ 출처 : CRS 보고서, pp.50-51
 
1930~1940년대 일본 사학계에서는 만주를 지배하기 위한 명분을 축적하기 위해 만주와 중원의 역사를 분리하는 만선사관에 따라 고구려사를 연구했다. 중국의 김육불은 그런 일본의 의도를 간파하고, 만주와 중원이 원래 하나의 역사공동체였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고구려는 중국 고대의 지방정권”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고구려사 연구에 있어 기본전제는 일본과 중국 두 나라의 정치적 목적이 반영된 시각을 배제하고 고구려사 그 자체를 사실에 입각하여 바라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한국의 고구려사 연구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①고구려의 성장, 발전과정이 한 군현과의 투쟁과 그것의 퇴출과정이었다는 것, ②고구려가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했고 독자적으로 국왕을 세운 독립국가였다는 것, ③고구려는 필요에 따라 중국 남조와 북조 양쪽과 모두 조공책봉관계를 맺었고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중국 왕조들과의 관계를 운용했다는 것, ④중국과 서역 등 외부의 문화적 영향을 받아들여 전래의 고유문화와 결합, 독창적인 문화를 창조해냈다는 것, ⑤고구려는 중국과 다른 자국 중심의 독자적인 천하관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⑥당과 고구려의 전쟁은 내전이 아니라 국가 간의 전쟁이었다는 것 등을 밝혀냈다.

고구려는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고 있던 독립국가였으며, 이것은 동북공정 실시 이전까지 중국 학계에서도 인정하고 있었다.

역사의 귀속은 후대인이 그 역사를 자국의 선대 역사로 인정하는 위에서 역사서를 펴내고 그로 인해 역사계승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성립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중국정사에서는 『송사』 이래 고구려를 고려의 선대 왕조로 서술해 왔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한국사에서도 『삼국사기』에 명백히 보이듯이 고구려를 백제, 신라와 함께 자국의 선대 역사로 서술했다. 또 『삼국유사』에 단군신화를 한국 민족 최초의 건국신화로 수록했고 고구려 시조인 주몽을 단군의 아들이라고 적어놓았다.

즉 고조선에서 고구려로, 다시 고려로, 고려에서 조선으로 역사가 이어졌다고 인식했던 것이다. 이런 역사계승 인식이 오늘날 남북한의 영문국호(KOREA)에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청전 조병현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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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고 진부한 도시공원, 공원도 재정비가 필요하다

성능평가체계 구축하고 공공 예산 확충해야민간 재원 적극 활용하려는 방안 마련 필요 삶의 질에 관한 관심이 커지면서 ‘숲세권’, ‘공세권’이라는 용어에서 볼 수 있듯 공원에 대한 관심과 선호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최근 코로나 위기를 겪으며 답답한 시민들의 휴식처.. 이태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 | 국토와교통 2021년 09월호(446호)
건설업 건설기술인 비정규직 활용 실태와 처우 현황

건설기술인 비정규직 문제, 관심과 지원책 절실 비정규직 문제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노동문제와 관련한 대표적 이슈 중 하나다. 이는 크게 노동 유연성 확보, 근로·고용 안정성(job stability),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정당한 처우 여부 간의 대립을 뜻한다.. 전영준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 국토와교통 2021년 09월호(446호)
물류 자동화 ‘레고형 셔틀 시스템’, 수직이동으로 공간활용도 높아

보관·하역작업 자동 처리, 효율성 확보…물류신기술 제3호 지정 크기가 다양한 화물의 적재와 이송이 가능한 ‘레고형 셔틀 시스템’이 물류신기술 제3호로 지정됐다. 신기술은 최대 50㎏ 미만 상품박스의 보관, 이송, 피킹 작업을 수행하는 다품종 소형 화물에 특화된 복합.. 김정현 기자 | 국토와교통 2021년 09월호(446호)
제1호 스마트물류센터 인증…물류첨단화 이끈다

파스토, 한진, CJ대한통운, 로지스밸리SLK, 로지스밸리천마, 하나로TNS 등 6개 기업의 물류시설이 국내 첫 번째 스마트물류센터로 인증됐다. 스마트물류센터 인증제는 효율성과 안전성이 우수한 첨단 물류시설에 민간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도입됐다. 국토교통부는 제도를 정비하.. 김정현 기자 | 국토와교통 2021년 09월호(446호)
여수~남해 해저터널 등 38개 ‘예타’ 통과

재정사업평가위원회…2차 예타 대상 12개 사업도 선정   여수~남해 해저터널과 부산 가덕대교~송정IC 등 38개 국도·국지도 건설사업이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했다. 예타를 통과한 사업은 9월 고시 예정인 제5차 국도·국지도 건설계획에 포함되고 우선순위에 따라 순차.. 이미영 기자 | 국토와교통 2021년 09월호(446호)
한·중 경계의 역사적 변화에 대한 시각 (4)

[특별기획] 청전 조병현 박사의 영토이야기 한국 역사지도에 대한 인식과 비판 지금까지 한국 역사지도의 한․중 경계표시 사례를 살펴보았다. 여기에 인용된 지도는 동북아역사재단에서 2008년부터 2015년까지 국고 47억원을 들여 60여명의 대학교수들이 제작한 《.. 조병현 박사 | 국토와교통 2021년 09월호(446호)
파산한 민자사업 시행자는 실시협약 해지 불가

대법원 2021.5.6. 선고 2017다273441 전원합의체 판결 원고(상고인) : 그린손해보험의 파산관재인 예금보험공사피고(피상고인) : 대전광역시결과 : 상고 기각, 피고 승소 사건의 내용 대전광역시는 2008년 3월 20일 언더파크가 대전광역시로부터 제공받은 토지에 지.. 김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 | 국토와교통 2021년 09월호(446호)
실패한 다이어트 사례

[류영창의 웰빙라이프] 황제 다이어트1963년 심장병 전문의인 애트킨스는 “탄수화물을 피하면 고기, 지방, 소시지 등을 마음껏 섭취하더라도 비만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는 이른바 ‘황제다이어트’를 유행시킨다. 그의 연구소에서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51명의 평균 체중은.. 류영창 박사 | 국토와교통 2021년 09월호(446호)
잇몸질환 예방에 좋은 ‘국민간식’ 옥수수

여름 끝자락에는 옥수수가 제철이다. 갓 쪄내온 노란 옥수수는 촉촉하면서도 쫄깃하고 옥수수 특유의 단맛이 난다. 뜯어먹는 모습도 재미가 있어서 그 모습을 하모니카에 비유하기도 하며 알갱이를 하나씩 떼어내어 먹기도 하고, 시즈닝 등 양념을 하여 즐기기도 한다. 아삭아삭 단.. 김정현 기자 | 국토와교통 2021년 09월호(446호)
한려수도의 절경, 통영 욕지도!

욕지도는 한려수도에 있는 욕지면의 본섬으로 해안선 길이가 31km 이르고 천왕봉이라는 산을 품고 있는 섬이다. 가는 길은 순탄치 않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아름다운 섬으로 명성을 높이고 있다.통영에서 약 1시간 정도 배편으로 이동하면 도착하는 욕지도. 욕지도 향하는 첫 배편은.. 한국관광공사 | 국토와교통 2021년 09월호(446호)
3기 신도시 사전청약 시작, 흥행 ‘성공’

사전청약 첫날, 홈피에 20만명 몰리며 ‘관심’ 국토부, 올해 목표 3만호에 2000호 추가 공급 정부의 수도권 신규택지에 대한 사전청약이 7월 28일 시작됐다. 이날부터 사전청약 홈페이지(사전청약.kr)에서 1차 물량인 인천 계양 1050호, 남양주 진접2 1535호, 성남 복정1 10.. 이미영 기자 | 국토와교통 2021년 08월호(445호)
하반기 주택공급 최우선…택지 추가확보 적극 검토

추격매수 신중…4대 교란행위 집중 단속정부 합동브리핑, ‘호소·경고’로 시장 안정 효과 기대 정부가 7월 28일 합동 브리핑을 열어 현재 집값 수준과 향후 금리인상 가능성, 정부의 주택공급 의지 등을 거론하며 주택 매수를 자제해 달라는 이례적인 호소문을 발표해 눈길.. 박병기 기자 | 국토와교통 2021년 08월호(445호)
공간정보 융·복합 국토도시 체제 구축 나서

LX-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업무협약 체결 LX 한국국토정보공사와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가 데이터 기반의 국토공간 계획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힘 모은다. LX 한국국토정보공사와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는 7월 8일 업무협약식을 갖고 기념 세미나를 유튜브 채널 ‘도시TV’.. 김정현 기자 | 국토와교통 2021년 08월호(445호)
하반기 주택매매 1.5%, 전세 2.3% 상승 전망

[하반기 건설·주택 경기 전망]건설수주 1.7% 증가한 197.4조원…역대 최고치 경신 건설투자도 1.6% 증가해 3년 연속 감소세 마감할 듯   한국건설산업연구원(원장 이재영)은 최근 ‘2021년 하반기 건설·주택경기 전망’ 세미나를 개최하고 “올 하반기 동안 전국 주택.. 박병기 기자 | 국토와교통 2021년 08월호(4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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