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18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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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李鐘浩 북경민족대 아세아문화연구소 객좌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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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연재 > 여창기
발행일 2017년 10월 10일 (399호)
   
중국(中國)이라는 나라


지구의하늘아래(46)

지난 4월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트럼프 미대통령과의 첫 만남에서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고 했다. 무슨 헛소리인가.

서기전 59년, 아세아 동북부와 한반도 여러 곳에서 부락(部落)을 이루고 움막에 살던 우리 조상 한민족(韓民族)이 처음 신라(新羅)라는 초기형태의 나라를 건국했다.

그러나 이보다 1000여 년을 앞선 서기전 1006년, 중국에서는 황하(黃河) 중류인 현 하남성 주구(周口) 일대를 중심으로 전근대적 왕조국가인 주(周)나라가 세워졌지만 전770년부터는 중앙조정이 허약해져서 전국은 여러 제후(諸侯)가 각기 나라를 자칭하며 할거하는 춘추전국(春秋戰國)시대가 전256년까지 이어졌다.

이 기간 동안 각 제후국은 이른바 제자백가(諸子百家)들에 의거 윤리학(孔子, 顔回, 曾子), 논리학(孔孫龍), 철학(老子), 문학, 역사학(孔子 등), 병학(兵學 : 管仲, 吳起), 외교학(鬼谷子, 蘇秦), 농학(農學 : 許行, 陳相) 등 학문이 완성되어 정신 및 일부 실용문명의 근대화를 이룩하고  오늘날까지 그대로 전승되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사실은 주변국가, 특히 예교(禮敎)를 기본이념으로 하는 우리민족에게는 문명의 종주국(宗主國)인 중원왕조(中原王朝)를 큰집으로 여기는 의식이 자연적으로 이루어지고 주변국은 나라이름도 큰집 나라는 한 발음 글자인 주(周), 한(漢), 당(唐), 송(宋), 명(明) 등으로, 주변국은 두 글자인 신라(新羅), 고려(高麗), 조선(朝鮮), 안남(安南), 발해(渤海), 일본(日本)으로 하였다.

이에 따라 큰집 나라 중국은 작은 집 나라 주변국과 독립된 국가체제를 유지하면서 내정에는 간섭하지 않으면서도, 작은 집 나라 주변국이 외국의 침공을 받았을 때는 조건 없이 군대를 보내 지원하여 국권(國權)을 보전토록 하였다.

이런 의리(義理)에 기반한 공생관계는 당시의 동양적인 국제질서의 기본 틀이었다. 이에 따라 한반도 조정에서는 매년 절기마다, 또는 길흉사가 있을 때는 사절(使節)을 보내 경조의(慶弔儀)를 표하고, 왕위계승 등 국가대사를 품신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였다. 사신(使臣)은 토산품을 선물로 가져가고 이를 받은 중원의 큰집 왕조는 그보다 몇 배로 값진 물품을 보내주었다. 이러한 조공(朝貢)방식은 일종의 국제무역의 한 형태이기도 했다.

19세기에 들어와 서양(西洋)인들에 의한 영토개념이 도입되어 일본은 청(淸)의 실권자인 이홍장(李鴻章)에게 “조선은 중국의 영토(領土)인가”하고 공식적으로 물었을 때 이홍장은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대답하였다.

실제로 조선은 고대부터 단일민족국가(單一民族國家)였지만 중국은 순수한 한족(漢族)국가라고는 송(宋)과 명(明) 두 나라 뿐이었다. 그 밖의 많은 나라들은 저들 한족이 남만북적동이서융(南蠻北狄東夷西戎)이라고 야만시하는 이민족(異民族)과 혼성되었거나 이들에 의한 정복왕조(征服王朝)로서 그 대표적인 정복왕조가 몽고족에 의한 원(元 : 164년간)과 여진족에 의한 청(淸 : 270년간)이었다.

원(元)나라는 저들이 정복한 중원천지를 수탈의 대상으로 여겨 침략 초기 징기스칸은 주민(漢族)은 전원 몰살시키고 농경지는 모두 초지(草地)로 만들어 목축장으로 하도록 명령하였다. 그러나 징기스칸의 비서관이었든 거란(契丹)인 야율초제(耶律楚材)가 그냥 살려서 농사를 짓게 하고 곡물을 조세(租稅)로 받는 것이 이득이라고 설득하여 전 한족(漢族)이 절멸의 위기를 모면했다.

지금 북경 교외의 이화원(頤和園) 입구에는 한(漢)족 생존의 은인 야율초제의 기념관과 묘소가 숲에 가려 보이지 않게 조성되어 있는 것을 필자가 찾아낸 일이 있다. 지금 중국은 마지막 정복왕조인 청(淸)의 여진족도 한문화(漢文化)에 동화되었다고 하지만 오늘날 중국남녀들이 즐겨 입는 치파오(旗袍)는 여진족의 청(淸)나라 복장인 것을 누가 모를까.

역사상 처음 근대국가였던 한(漢)나라는 개국조(開國祖) 유방(劉邦)이 사거하자 북쪽의 흉노 왕이 미망인 한(漢) 왕비에게 편지를 보내 “나도 홀아비 당신도 과부 우리 둘이 잘 해보세”라고 했다. 분기탱천한 왕비가 펄펄 뛰었으나 “나는 이미 늙은 몸 그만 잊어주소서”라고 답신할 수밖에 없도록 나라가 흉노에게 오랫동안 시달렸다.

저들이 태평성대였다고 하는 당(唐)도 티베트족의 압력을 받아 공주(公主)들을 두 번이나 티베트 왕에게 시집보내야 했다. 전 221년, 최초 통일국가인 진(秦)이 건국하고 지금까지 2300여 년 동안 중원천지는 오호십육국(五胡16國 : 흉노족), 토번(吐藩 : 티베트족), 북위(北魏 : 鮮卑족), 요(遼 : 거란족), 금(金 : 여진족), 서하(西夏 : 당구트족), 원(元 : 몽고족), 청(淸 : 여진족) 등에게 거의 1500여 년 간이나 판도의 서, 남, 북부 내지 중원의 태반 또는 전 국토가 이민족(異民族)에게 유린당한 만신창이의 역사였다.
 
2017년 4월 미중정상회담에서 시진핑의 근거 없는 조선 속국 망언(妄言)은 그의 음흉한 속셈을 들어낸 것이다. 1953년 산서성 부평(富平)에서 출생한 시진핑은 13세 때 문화혁명(文化革命)를 맞아 1934년 대장정(大長征) 때 공신(功臣)인 그의 부친 시충훈(習仲勳)이 모택동에게 투옥당하여 있어 문혁을 반대하는 몇마디 말을 했다가 반혁명분자로 몰려 수감되었지만 감옥을 탈출, 집으로 도피했으나 집에서는 음식을 주기는커녕 자식의 탈주사실을 당국에 통고, 다시 붙잡혀 교화소에 수감되었다.

그는 이곳에서 강도, 상해 등 소년범죄자들과 함께 3년 동안 수용되었다가 다시 산서성 연안(延安) 근처 시골로 하방(下方)되어 7년 동안 토굴에 기거하면서 인근 농민들과 함께 육체노동을 했다. 그는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북경 집으로 도망했으나 백부의 훈도로 다시 산서성으로 돌아가 임무를 마치고 20세에 공산당원이 되어 25년간 여러 지방정부를 전전하면서 승진을 거듭, 드디어 2013년 3월 14일 임기 10년의 주석(主席)이 된, 신장 180cm, 체중 100kg인 거구의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 배후에는 주은래(周恩來) 총리의 주선으로 복권되어 국무원 부총리로 태자당(太子党)의 핵심이 된 부친 시충훈의 적극적 지원이 있었음은 물론이지만, 그가 겪은 초년기의 극한의 시련은 그의 강인한 인내심과 저돌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성격형성의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일찍 주영대사의 딸과 결혼했으나 곧 이혼하고, 1987년 현역 인민해방군(人民解放軍) 가무단 가수인 팽려원(彭麗媛)과 재혼했다. 하버드대학 출신의 시밍저(習明澤)가 이들의 외동딸이다.

시진핑은 청화대학(淸華大學) 화공학과를 졸업하였으나 농촌문제를 다룬 논문으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대단한 독서가라고 자칭하지만 2016년 9월에 개최된 항주 G20회의 개회사를 읽으면서는 원고(原稿)의 고전(古典) 인용문인 ‘通商寬農’을 ‘通商寬衣’로 잘못 읽어 통역담당자를 당혹케 하고 중국어에 능통한 참석자들을 실소케 한 일이 있었는데 ‘寬農’은 농민을 우대한다는 뜻이고 ‘寬衣’는 옷을 벗는다는 뜻으로, 한자 ‘農’의 간체자(簡体字)가 ‘衣’자와 비슷한 것을 구분 못하는 수준이라면, 한국이 중국 속국이었다고 능청스레 말한 것을 우스워할 일만도 아닐 것 같다.

1949년 10월 1일 모택동(毛澤東)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하면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오성기(五星旗)에는 조선인민의 선혈(鮮血)이 스며있다”고 했다. 이는 1946년 국공내전(國共內戰)시, 중공군이 장개석(蔣介石) 부대의 공격을 받아 큰 위기에 처했을 때 모택동의 요청으로 김일성(金日成)이 일본군에게서 노획한 10만정의 각종무기와 흥남비료공장에서 제작된 대량의 폭약, 15만 켤레의 군화 그리고 포병 및 공병부대를 지원, 장개석군 축출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이 일은 모택동의 자존심이었을까 오랫동안 세상에 공표되지 않았다. 이런 사실은 6.25 때 중공군의 북한지원과 함께 오늘날까지 중조밀착(中朝密着)의 본질적이고 숙명적인 근원이 되었다. 근래 김정은이 중국에 대하여 반항하고 거칠게 나오지만 중국은 이를 어쩌지 못하고 감싸는 것은 중국의 대미완충역(對美緩衝役)이란 지정학적 이점 말고도 이런 역사적인 은원관계로 “북핵 때문에 북한정권을 멸망시킬 수는 없다”는 기본입장을 중국은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8월 1일 중국의 건군절(建軍節) 기념행사는 언제나처럼 북경장안대로가 아닌 내몽고의 주일화(朱日和) 훈련기지에서 거행되었다. 육해공군 1만 2000명, 군용기 120대, 미사일 탄도탄 등 군장비 600대가 동원되었는데 장비 중 40%가 신형이었다. 언제 연합작전지휘총사령관이 된 얼룩무늬 군복차림의 시진핑이 군용 짚차를 타고 도열장병을 사열하면서 “동지먼 신쿠러!”(동지들 수고하오!) 하였다. 이날 행사장소는 1219년 징기스칸의 세계제국건설을 위한 대기마군단이 서역을 향해 출발한 지점 근처였다.

스트롱맨 시진핑의 군사력 과시와 금후 야욕을 들어낸 것일까. 지난 9월 3일 북한은 여섯 번째  핵실험을 실시했다. 몇 년 전 이라크의 후세인과 리비아의 카다피가 강대국의 압박에 굴복하여 핵을 포기한 후 곧 미국의 공격으로 두 사람 모두 무참하게 처형, 살해된 사실을 알고 있는 김정은이 죽어도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세계에 선포한 것이다.

이에 대한 9월 11일 통과된 UN안보리(安保理) 결의안은 5대 상임이사국 저들만의 국가이익기준으로 조정된 솜방망이에 불과했다. 아니나 다를까. 9월 15일 새벽 김정은은 장차 유럽까지도 갈 미사일을 태평양으로 발사했다.

시진핑은 한국의 사드 설치에 대해 조폭수준의 행패를 계속하고 있다. 이 순간에도 북녘에서 다가오고 있는 핵의 먹구름 아래 우리는 동맹국과 함께 더 강력한 최첨단 전술 전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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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 장관 “정부가 국민 ..

201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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