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22일,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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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조병현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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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연재 > 영토이야기
발행일 2017년 10월 10일 (399호)
   
북한 땅은 죽은 땅, 북한 땅에 새 생명을(4)

 
조병현 박사의 북한 땅 이야기
 
분단 당시 지적공부
사람에게 호적이 있듯이 땅에는 지적이 있다. 지적은 국가가 일필지 단위로 지번을 부여하고 지목, 면적, 경계를 정하여 등록하는 공적장부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지적을 등록한 공적장부를 지적공부(地籍公簿)라 하는데 크게 도면과 대장으로 구분한다.

도면은 지적도, 임야도 등과 같이 토지에 대한 소유권 등 물권이 미치는 범위와 모양 등을 나타내는 경계를 등록하고 대장은 토지대장과 임야대장 등과 같이 토지의 물리적 현황과 법적 권리관계 등을 등록공시하기 때문에 사람의 호적과 같다. 지적을 사람의 신분에 관한 기록으로 정의되는 호적과 비교하면 보다 쉽게 이해 할 수 있다. 

북한의 지적공부는 남한과 마찬가지로 대한제국의 토지조사사업을 이어받은 조선총독부의 토지조사사업과 임야조사사업에 의하여 1924년에 완성되었다. 토지조사사업은 지적공부 작성을 위한 기선측량, 삼각점측량, 토지조사 순으로 진행하였다.

삼각측량의 기초가 되는 기선측량은 13개소의 검기선과 78점의 기선망을 설치하였다. 전체 13개기선 중 분단 당시 북한 지역에 소재한 검기선은 평양, 의주, 함흥, 길주, 강계, 혜산진, 고건원 등 7개소이며, 기선망은 44점이다. 기선측량과 함께 표고를 결정하기 위하여 검조장을 설치하고 3년 이상 표고를 관측하였는데 북한지역의 검조장은 청진(표고 2.636m), 원산(표고 1.931m), 진남포(표고 6.140m) 등 3곳을, 높이를 나타내는 수준점은 1904점을 배치하였다.

측량기준점의 골격을 이루는 대삼각본점측량은 대마도와 거제도, 절영도를 잇는 대마연락망부터 북한지역의 함중망까지 23개 망으로 구분하여 부산, 대전, 서울, 신의주 방향으로 진행한 후 동서 방향으로 설치하였고 지세를 급히 징수하기 위하여 실시한 시가지의 특별소삼각측량을 실시하였는데 북한지역은 평양, 의주, 신의주, 진남포, 강경, 원산, 함흥, 청진, 경성, 나남, 회령이 있다. 일반삼각점은 총 3만 4447점 중에서 북한지역에 1만 6237점을 설치하였다.

일반적으로 한 나라의 위치를 결정하는 측량기준점은 천문측량을 실시하여 설정하여야 하나 우리나라는 일본의 1등삼각점에 연결한 대마도 연락망을 채택하여 우리나라의 1등삼각점은 일본의 2등삼각점에 불과하여 성과의 정확도가 떨어졌다. 일본의 1등삼각망의 방위표정을 위한 중력편차의 영향을 고려하지 않아 천문측량에 의하여 위치를 결정한 만주지역 삼각점과 우리나라 삼각점이 남으로 290m, 동으로 400m 정도의 차이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적공부 작성을 위한 토지조사는 토지소유권 조사, 토지가격 조사, 지형지모(地形地貌)조사로 이루어진다. 토지소유권 및 토지가격의 조사는 준비조사, 일필지조사, 분쟁지조사, 지위등급조사, 장부조제, 사정, 이동지정리, 지적조사 순으로, 지형지모 조사는 삼각측량, 도근측량, 세부측량, 면적계산, 지적도 등의 조제, 이동지정리 순으로 진행되었다. 토지조사사업의 결과로 1910만 7520필지의 소유권과 그 강계를 사정하고 토지대장 10만 9998책, 지적도 81만 2093장 등의 지적공부를 작성하였다.

토지조사사업이 완료됨에 따라 지적공부는 시ㆍ군으로 이관되고 임시토지조사국은 해산되었다. 1943년 12월 1일 지적업무의 감독기관인 세무감독국이 폐지됨에 따라 지적사무가 도(道)로 이관되었다. 그러나 측량업무는 세무서에서 계속 관장하였다. 지적측량은 1938년 1월 17일에 ‘조선지적협회’가 설립되어 지적측량업무를 대행하던 기업자측량 및 도지정측량자제도를 폐지하고, 1940년부터 협회에 직접 측량신청을 하도록 조치했다. 조선지적협회는 분당 당시 북한지역에 2개 지부와 36개 출장소를 두고 있었다.

분단 당시 북한지역의 지적도는 27만 9609장으로 지목별 면적은 1억 1076만 6508㎢이다. 토지조사사업 당시에 작성한 북한지역의 지적도는 남한지역과 마찬가지로 시가지지역의 축척 600분의 1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1200분의 1로 작성되었다. 예외로 일필지 면적이 큰 서북지방은 2400분의 1로 작성되었다. 600분의 1지역은 평안남도의 평양부 일부와 평안북도의 신의주부, 함경남도 원산부, 경북도의 청진부가 있다.

북한지역의 지적원도는 국가기록원에 리ㆍ동별로 특수제작된 종이박스에 보관되어 있으며, 보관상태는 양호하다. 도곽신축이나 마모ㆍ훼손 등 변형은 크게 없으나 일부 도면이 직접자사법에 의한 소도작성으로 경계점에 홈이 있는 도엽도 있다. 북한지역의 지적원도가 필요한 사람은 누구나 열람하거나 사본을 발급받아 확인할 수 있다. 
 
토지개혁과 개인 토지 몰수
북한의 토지개혁은 일본인토지소유와 조선인지주들의 토지소유 및 소작제를 철폐하고, 몰수 토지를 무상으로 농민 소유로 넘기기 위해 1946년 3월 5일 발표한 ‘북조선토지개혁에 대한 법령’에 의거 3월 30일까지 실시되었다. 토지개혁 당시 북한의 농경지 100여 만 정보가 몰수되었으며, 이 중 97만 정보가 농민에게 무상으로 분배하였고, 나머지는 국유화 조치하였다.

북한은 토지개혁을 위하여 동ㆍ리마다 농촌위원회를 조직하여 1947년 3월까지 토지개혁을 이행토록 계획하였으나 즉시 단행하여 20일 만에 완료하였다. 이 법령은 1948년 9월 9일 북한 헌법으로 그 합법성이 부여되어 1958년 8월 농업협동화 완성 시까지 효력이 지속되었다.

북한은 이 법령을 보완하기 위하여 형사법 성격의 ‘토지개혁실시에 대한 임시조치법’(1946. 3. 5)과 ‘토지개혁법령에 대한 세칙’(1946. 3. 8)을 제정하고, 토지와 농촌인구에 대한 실태조사사업을 추진하였다. 조사는 주로 농지를 대상으로 토지의 지번, 면적과 필지별 토질상태 등을 조사하여 재확정 하였으며, 공업용지, 철도용지, 잡종지, 분묘지, 도로, 하천, 제방, 성토 등 공공용지성 토지도 조사하여 등록하였다.

이를 근거로 몰수대상 토지를 확정하였으며, 토지의 비옥도, 상태 등을 고려하여 토지분배안을 확정하였다. 1946년 5월 22일 발표된 ‘토지소유권 증명서 세칙’에 의거 토지를 농민에게 분배하고 토지소유권 증명서를 교부하였다.

몰수 토지는 △일본국가, 일본인 및 일본인단체의 소유지 △조선민족의 반역자, 조선인민의 리익에 손해를 주며 일본제국주의의 통치기관에 적극 협력한 자의 소유지 △일제의 압박 밑에서 조선이 해방될 때 자기 지방에서 도주한 자들의 소유지 △한 농호에서 5정보 이상 가지고 있는 조선인 지주의 소유지 △자기가 경작하지 않고 모두 소작 주는 소유자의 토지 △면적에 관계없이 계속적으로 소작 주는 모든 토지 △5정보 이상을 가지고 있는 성당, 승원 기타 종교 단체의 소유지 등이다.

몰수하지 않는 토지는 △학교, 과학연구기관, 병원의 소유지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의 특별한 결정으로 규정한 조선의 자유와 독립을 위하여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을 반대하는 투쟁에서 공로있는 사람들과 그 가족에게 속하는 토지 △조선민족 문화발전에 특별한 공로가 있는 사람들과 그 가족에게 속하는 토지 등이다.

토지분배는 지적공부를 기초로 이루어졌다. 토지분배에 따른 지적공부 열람과 등본발급, 지적측량업무가 증가함에 따라 1946년 7월 20일 ‘지적사무수수료개정의 건’을 발표하여 토지대장, 임야대장, 지적도, 임야도의 열람료와 등본교부수수료 및 측량수수료를 정하였다.

토지대장과 임야대장 열람수수료는 일책(一冊), 1회에 대하여 1원으로 규정하고 1시간 이상 열람할 경우에는 2원으로 정하였다. 토지대장과 임야대장 등본은 1번지에 대하여 2원으로 하였다. 지적도, 임야도 등본발급은 지적도 1도엽을 기준으로 1번지에 5원으로 하였으며, 동일 도엽에 2번지 이상 묘화할 시는 1번지마다 1원을 추가하였다. 측량수수료는 분할측량의 경우 분할 후의 지번 1필에 대하여 25원으로 정하였으며. 경계감정측량은 기본면적 100평까지 1000원으로 하고, 100평 증가에 대하여 50원을 추가로 가산토록 하였다.

분배토지 중에서 1필지를 2인 또는 3인에게 분배해야 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함에 따라 1947년 1월 1일부터 분배토지 분할측량 및 지압조사가 시작되었다. 이에 측량사 총동원령이 내려져 임시토지조사국에 종사한 자, 일제 때 세무서 또는 지적협회의 측량기사, 만주에서 측량업무에 종사한 자를 우선적으로 차출하였다. 조직은 군인민위원회장(군수)을 위원장으로, 그 아래 총 책임자로 총기사를 두고 기사와 산정수, 측부, 사무원 2~3명을 배치하여 측량업무를 담당하도록 하였다. 1947년 10월 30일까지 분할측량 및 지압조사를 마치고 2개월 간 토지집계표를 작성하였다. 집계표 작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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